소설 Part 1-12: 김일한 박사 이야기(아바타와의 조우 편)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두 사람은 드디어 태백산의 정상, 천제단에 도착했다.
상민은 조금도 지친 기색 없이 시원하게 숨을 내쉬며 정상에 선 자신을 만끽했다.
그는 은퇴 후 꾸준히 등산으로 체력을 다져왔기에 이번 등산도 가뿐히 소화해냈다.
반면 일한은 얘기가 달랐다.
오랜 시간 운동과 담을 쌓고 지낸 그의 몸은 이미 한계에 가까워 있었다.
천제단 바로 아래 계단에 도달했을 때는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 넘어질 듯한 기세로 비틀거리며 마지막 걸음을 내디뎠다.
"이야, 여기까지 올라오느라 고생했지?"
상민이 농담조로 물었다. 그러나 일한은 대답 대신 무릎을 짚고 크게 숨을 몰아쉬며 손사래를 쳤다.
잠시 숨을 고른 뒤, 두 사람은 천제단으로 올라 경치를 둘러보았다.
안개가 옅게 깔려 산 아래 풍경이 명확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오히려 그 신비로운 분위기가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었다.
서늘한 바람이 땀에 젖은 이마를 식혀주자 일한은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자, 이제 이런 멋진 곳을 자주 보러 와야지."
상민이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앞으로 종종 같이 등산 가자고. 혼자 오는 것보다 둘이 오는 게 훨씬 재미있잖아."
일한은 상민의 말에 답 대신 옅은 웃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웃음은 고단함 속에서도 묘하게 진심이 담긴 미소였다.
산 정상이 주는 평온함 속에서, 두 사람은 잠시 말없이 풍경을 바라보았다.
하산길에 접어들었을 무렵, 빗줄기가 점점 굵어지더니 머지않아 천둥소리가 멀리서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어둑한 숲길은 비로 더욱 미끄러워졌고, 나무 사이로 섬광이 번뜩이는 모습이 불안감을 더했다.
“빨리 내려가야겠어!”
상민이 목소리를 높였다. 일한도 고개를 끄덕이며 발걸음을 서둘렀다.
두 사람은 길을 따라 주차장을 향해 부지런히 걸음을 재촉했다.
점점 가까워지는 천둥소리는 이제 바로 등 뒤에서 울리는 것처럼 들렸고, 공기가 무겁게 내려앉는 듯한 기운이 감돌았다. 주차장이 보이기 시작했을 때, 어디선가 찢어질 듯한 번개의 굉음이 울렸다.
“으악!”
상민이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하늘을 가르는 듯한 섬광이 두 사람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그 순간, 일한은 자신이 번개의 중심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느꼈다.
몸 전체가 순식간에 싸늘해지는 듯했지만, 동시에 강렬한 열기가 퍼져나갔다.
모든 것이 일순간 멈춘 듯 고요해졌다.
상민과 일한은 얼어붙은 채 서로를 쳐다보았다.
눈에 띄는 상처나 이상은 없었다.
둘 다 살아 있었다.
“우리... 방금 번개 맞은 거야?”
상민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번개를 더 맞을까 봐 불안감에 휩싸인 두 사람은 주차장을 향해 달렸다.
차가 보이자마자 다급히 문을 열고 탑승한 뒤, 비로소 긴장이 약간 풀렸다.
일한은 차창 밖으로 쏟아지는 빗줄기를 바라보며 숨을 고르고 있었다.
“우리... 정말 번개 맞은 걸까?”
상민이 운전대를 잡은 채 조심스럽게 물었다.
일한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글쎄... 눈앞에서 번개가 떨어지는 건 분명히 봤는데, 그다음 기억이 흐릿해. 너는 어때?”
상민도 고개를 저었다.
“나도 마찬가지야. 순간적으로 엄청난 소리와 빛만 느꼈는데, 그 뒤로는 잘 모르겠어. 그런데 이상하게도 우리 둘 다 멀쩡하잖아?”
둘은 서로를 살피며 괜찮은지 확인했다.
상처나 화상은커녕 몸에 아무 이상도 없다는 사실에 안도하면서도 찝찝함은 가시지 않았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병원에 가보자. 이런 건 괜히 방치하면 안 좋아질 수도 있어,”
상민이 단호하게 말했다.
일한도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상민은 차를 몰아 빗속을 뚫고 태백 시내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