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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와 빵(bread)의 동행: 기원, 변천, 그리고 한국에서의 첫 빵 이야기

오늘을 사랑하자! 2024. 12. 16.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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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빵이란 무엇인가?

 

1.1 빵의 정의와 기본 재료
빵은 곡물을 갈아 얻은 밀가루(혹은 다른 곡물가루)를 주원료로 하여, 물과 소금을 혼합해 반죽한 후 열을 가해 만든 식품입니다. 발효 과정을 거친 빵은 부드러운 질감을 가지며, 발효 없이 만든 빵(예: 납작빵)은 단단하고 씹는 맛이 강한 특징이 있습니다.

주재료는 지역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이 가장 흔히 사용됩니다. 이는 밀가루가 글루텐이라는 단백질 성분을 포함하고 있어 반죽 시 탄력성과 팽창성이 뛰어나기 때문입니다. 빵은 재료와 조리 방식에 따라 크게 발효빵비발효빵으로 나뉘며, 서양에서는 발효빵(예: 바게트, 식빵)이, 중동과 아시아 일부에서는 비발효빵(예: 피타, 로티)이 주로 소비되었습니다.

1.2 빵의 종류와 특징

  • 발효빵: 이스트나 천연 발효종으로 팽창된 빵으로, 공기 주머니가 생겨 부드럽고 풍미가 강합니다.
    • 예: 식빵, 바게트, 치아바타
  • 비발효빵: 팽창하지 않고 납작하게 구워지는 빵으로, 저장성이 좋고 운반이 용이합니다.
    • 예: 피타, 토르티야, 난
  • 특수 빵: 고구마, 감자 등 밀 외의 곡물을 활용하거나 글루텐을 제거한 빵.
    • 예: 글루텐 프리 빵, 감자빵

빵은 현대에 들어서 다양한 형태로 발전했으며, 식사의 주식, 간식, 디저트 등으로 활용됩니다.


 

2. 빵의 기원과 고대 인류의 생존

 

2.1 최초의 빵: 고대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에서의 시작
빵의 기원은 약 기원전 10,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농경 사회가 시작되면서 곡물을 가공해 먹는 방식이 발전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 최초의 빵은 단순한 납작빵이었습니다. 곡물을 빻아 만든 가루에 물을 섞어 돌판 위에서 굽거나, 불에 직접 익혀 만든 형태로, 오늘날의 피타나 토르티야와 비슷했습니다.
  • 발효빵의 탄생은 고대 이집트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우연히 방치된 반죽이 공기 중의 효모와 반응해 부풀어오른 것을 발견한 것이 계기가 되었으며, 이를 통해 빵은 더욱 부드럽고 먹기 편한 형태로 발전했습니다.

이 시기의 빵은 단순한 식량을 넘어 종교적 의식에도 사용되었고, 사회적 신분을 구분하는 역할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 고대 이집트에서는 흰 빵은 귀족의 음식으로 여겨졌고, 거칠게 빻은 곡물로 만든 빵은 서민과 노동자들이 소비했습니다.

2.2 빵이 고대 인류의 생존에 미친 영향
빵은 농업혁명과 함께 인류의 생존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1. 영양 공급원: 빵은 곡물의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섭취할 수 있는 방법이었습니다. 밀, 보리 등의 곡물은 칼로리가 높고 저장성이 뛰어나 사냥-채집 사회에서 농경 사회로의 전환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2. 저장과 운반 용이성: 곡물 자체로 보관하기 어려운 영양소를 빵으로 가공하면 장기간 저장할 수 있어, 이주와 전쟁 중에도 생존에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3. 사회적 구조의 변화: 빵의 생산과 분배를 통해 계급 구조와 노동 분업이 발달했으며, 이는 문명 발전의 기반이 되었습니다.

 


 

3. 왜 빵을 먹기 시작했는가? 지역별 차이와 동아시아에서의 배경

 

3.1 왜 빵을 먹기 시작했는가?
빵이 인류의 식단에 자리 잡은 이유는 크게 효율성, 영양성, 그리고 활용성 때문입니다.

  1. 효율성: 곡물을 빻아 가루로 만든 후 반죽하여 구우면, 생곡물보다 소화가 더 쉽고, 적은 곡물로 더 많은 에너지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2. 영양성: 초기의 빵은 통곡물로 만들어져 섬유질, 비타민, 무기질이 풍부했으며, 특히 단순한 열량 공급을 넘어 필수 영양소를 제공했습니다.
  3. 활용성: 빵은 다양한 재료와 조리 방식으로 변형 가능하여 지역마다 독창적인 형태로 발전했습니다. 저장이 쉽고, 운반이 용이해 여행이나 전쟁 중에도 필수적인 식품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3.2 지역별 차이: 서양과 중동의 빵 문화 발전

  • 중동: 초기의 빵 문화는 중동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특히 납작한 비발효빵(피타, 라바쉬)이 주를 이루며, 이는 쉽게 굽고 휴대할 수 있어 목축민과 상인들에게 적합했습니다.
  • 유럽: 밀 재배가 확대되면서 발효 기술이 발전하였고, 다양한 모양과 질감의 빵이 등장했습니다. 중세에는 귀족과 평민의 신분에 따라 빵의 종류가 구분되기도 했습니다.
  • 아프리카와 아시아 일부: 사막 지역에서는 얇고 구운 빵, 남아시아에서는 로티와 같은 비발효빵이 주류를 이루었습니다.

3.3 동아시아에서 빵의 섭취가 낮았던 이유
동아시아는 서양과 달리 주로 쌀을 주식으로 삼는 농업 기반 사회였습니다. 이는 기후와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1. 주요 곡물의 차이: 동아시아는 밀보다는 쌀과 보리가 주로 재배되었습니다. 쌀은 빵으로 가공할 필요 없이 바로 소비 가능했으며, 찌거나 끓이는 방식이 더 효율적이었습니다.
  2. 조리 방식의 발달: 쌀을 기반으로 한 밥, 떡, 국수와 같은 조리 방식이 다양하게 발전하며 빵의 필요성이 낮았습니다.
  3. 문화적 선호도: 동아시아에서는 납작빵이나 바삭한 전병이 일부 존재했지만, 빵보다는 만두, 떡 등의 식품이 주로 발전했습니다.
  4. 기술 도입의 지연: 빵은 발효 기술을 필요로 하는데, 이 기술은 동아시아에 비교적 늦게 전파되었습니다. 대신 발효 기술은 김치나 된장 같은 다른 식품으로 적용되었습니다.

 

4. 빵의 변천사: 고대에서 현대까지

 

4.1 고대: 빵과 사회의 발달

  • 고대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최초의 빵은 단순한 납작빵 형태로 시작되었으나, 발효 기술의 발견 이후 부풀어 오른 빵이 등장했습니다. 이집트에서는 빵과 맥주가 주요 식량으로 사용되었으며, 피라미드 건설에 참여한 노동자들에게 지급된 주요 식량 중 하나였습니다.
  • 고대 그리스와 로마: 고대 그리스에서는 빵이 다양한 형태로 발전했으며, 로마 제국 시대에는 빵 굽는 전문 직업군(베이커)이 등장하며 대량 생산이 시작되었습니다.

4.2 중세: 빵과 신분의 상징
중세 유럽에서는 빵이 단순한 음식에서 벗어나 신분을 상징하는 식품으로 발전했습니다.

  • 백빵 vs. 흑빵: 귀족들은 정제된 밀가루로 만든 부드럽고 흰 빵을 먹었고, 농민들은 거칠고 단단한 호밀빵(흑빵)을 주식으로 삼았습니다.
  • 빵과 종교: 빵은 성찬식 등 종교 의식의 중요한 상징이 되었으며, 이를 통해 빵은 신성한 음식으로 인식되었습니다.

4.3 산업혁명: 빵의 대량 생산
19세기 산업혁명은 빵의 생산과 소비 방식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 기계화: 제분기, 반죽기, 오븐 등 빵 제조 기계의 발달로 대량 생산이 가능해졌습니다.
  • 효모의 상업화: 효모를 대량 생산하고 저장할 수 있게 되면서, 가정에서도 쉽게 빵을 만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 공급 확대: 빵이 대량 생산되면서 저렴해져, 귀족뿐 아니라 평민들까지 쉽게 소비할 수 있는 식품이 되었습니다.

4.4 현대: 다양한 트렌드와 웰빙 빵
현대의 빵은 전통적 형태를 넘어 새로운 재료와 조리법으로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습니다.

  • 글루텐 프리와 웰빙 빵: 건강을 중시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통밀빵, 글루텐 프리 빵 등 건강한 대체 빵이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 세계화된 빵 문화: 크루아상, 치아바타, 바게트 등 각국의 빵이 전 세계로 확산되며 글로벌한 빵 문화가 형성되었습니다.
  • 기술 발전: 3D 프린팅과 같은 혁신 기술을 통해 맞춤형 빵이 제작되는 등 미래 지향적인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5. 우리나라에서의 첫 빵 기록: 누가, 언제, 무엇을?

 

5.1 최초의 빵 기록: 조선시대의 서양 문화 접촉
우리나라에서 빵이 처음 기록된 시점은 조선 후기로 추정됩니다. 조선은 임진왜란(1592~1598)과 병자호란(1636)을 거치며 국방과 외교에 관심이 커졌고, 이 과정에서 서양 문물과 접촉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빵은 서양 선교사들과 통상 교류를 통해 처음 전해졌습니다.

5.2 최초의 빵 기록: 구한말(19세기)
빵에 대한 명확한 기록은 구한말 시기에 등장합니다. 1883년(고종 20년) 개항 이후 강화도조약으로 외국과의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서양 선교사와 외국인 상인들이 조선에 들어오며 빵이 소개되었습니다.

  • 주체: 초기에는 서양 선교사들이 빵을 직접 만들어 먹었습니다. 선교사들은 조선의 밀가루를 사용해 자신들만의 빵을 구웠으며, 이를 통해 빵은 조선 왕실과 상류층에 알려졌습니다.
  • 기록: 당시 빵은 “양과자”, **“양식”**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조선인들에게 생소한 음식으로 소개되었습니다.

5.3 고종 황제와 빵
구체적인 사례로는 **고종 황제(1852~1919)**가 빵을 처음 접한 일화가 있습니다.

  • 1896년 아관파천(러시아 공사관으로의 피신) 이후, 서양식 식생활을 접한 고종 황제가 빵을 시식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고종은 이후 빵을 점차 선호하게 되었으며, 왕실 주방에서 빵을 만들어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 기록에 따르면, 고종은 단맛이 가미된 소위 "설탕빵"을 특히 좋아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5.4 최초의 베이커리 설립
우리나라에서 대중적으로 빵을 판매하기 시작한 시점은 1910년대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 1920년대: 화신상회
    서울 종로에 있던 화신상회(현대 백화점의 전신)가 서양식 제과점을 운영하며 빵과 케이크를 판매하기 시작했습니다.
  • 1930년대: 미군정기
    광복 이후, 미군정기에 다시 한 번 빵이 주목받습니다. 미군은 군용식으로 빵을 사용하며 조선인들에게 빵이 더 널리 알려졌습니다.

5.5 누가 무엇을 먹었는가?
빵을 처음 접한 이들은 왕실이나 상류층, 그리고 서양 선교사와 교류하던 엘리트 계층이었습니다.

  1. 서양 선교사들: 조선에서 제빵 기술을 도입한 최초의 주체로, 선교사들은 조선인들에게 빵을 소개하며 밀가루와 효모의 사용법을 전파했습니다.
  2. 상류층과 양반: 왕실의 고종 황제와 상류층 인사들이 빵을 맛보며 서양 음식 문화를 탐닉하기 시작했습니다.
  3. 대중적 확산: 초기에는 상류층 중심으로 소비되었으나, 화신상회와 같은 상점이 등장하면서 빵은 점차 일반 시민들에게도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5.6 우리나라 빵의 초창기 형태
초기 한국에서 만들어진 빵은 다음과 같은 형태로 존재했습니다:

  1. 설탕빵: 서양식 빵에 단맛을 가미한 형태로, 고종 황제가 즐겼다고 전해집니다.
  2. 양과자: 과자처럼 단단하고 크기가 작은 빵으로, 주로 선물용으로 제작되었습니다.
  3. 식사용 빵: 서양 선교사들이 만들어 나눠주던 비발효빵(납작빵)과 기본적인 효모 빵이 포함되었습니다.

화신상회 사진 ; 우리역사넷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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