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조너선 스위프트, 그는 누구인가?
조너선 스위프트(Jonathan Swift, 1667~1745)는 아일랜드 태생의 영국 작가이자 성직자, 정치풍자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날카로운 풍자와 신랄한 유머를 통해 당시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했으며, 특히 18세기 영국과 아일랜드의 정치, 종교, 과학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담은 작품들을 남겼다.
스위프트의 대표작 《걸리버 여행기》(Gulliver's Travels, 1726년 초판 발행) 는 단순한 모험담이 아니라, 영국 사회의 부패, 정치 권력의 부조리,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은 걸작이다. 그는 ‘아이러니’와 ‘과장’을 능숙하게 활용하여 당대 권력층과 지식인들의 위선을 폭로했다.
스위프트는 영국과 아일랜드의 관계에 대해서도 강한 비판적 입장을 취했다. 특히 1729년 발표한 풍자 에세이 《겸손한 제안(A Modest Proposal)》 에서 아일랜드 빈민 문제를 조롱하는 듯한 방식으로 지적하며,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척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더 큰 문제를 초래하는 권력층의 무책임함을 비판했다.
그의 문학은 단순한 비판을 넘어서, 사회 개혁을 촉구하는 목적으로 쓰였다. 이러한 점에서 《걸리버 여행기》 역시 단순한 판타지 소설이 아니라, 깊은 풍자적 의미를 담은 작품 이라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2. 초판과 후속 판본, 무엇이 달랐을까?
《걸리버 여행기》 초판(1726년)과 이후 출간된 판본 사이에는 몇 가지 중요한 차이가 존재한다. 이는 당시 검열과 출판사의 개입, 그리고 독자 반응에 따라 일부 내용이 수정되었기 때문이다.
1) 검열과 수정: 초판의 날카로운 비판이 사라지다
초판은 영국 정부와 왕실, 정치인들을 더욱 신랄하게 풍자 하고 있었다. 그러나 출판 과정에서 검열을 피하기 위해 출판업자 벤저민 모트(Benjamin Motte)는 스위프트의 원고를 일부 수정하고 완곡한 표현으로 바꾸었다.
예를 들어, "영국 왕실과 정치인들이 사리사욕을 채우고 무능하다" 는 점을 암시하는 구절들이 많이 삭제되거나 완화되었다. 또한 ‘리리푸트 소인국’의 정치 구조는 당시 영국의 정치를 그대로 풍자한 것이었지만, 일부 직접적인 묘사가 희석되었다.
2) 걸리버의 시각 변화: 냉소적 결말의 수정
초판에서 걸리버는 여행을 마치고 귀국한 후, 인간 사회에 대해 강한 혐오를 느끼고 사람들과의 교류를 피하며 말을 더 신뢰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는 야후(Yahoo)족(인간을 조롱하는 존재)과의 유사성을 깨닫고 절망하는데, 이 부분이 너무 비관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후속 판본에서는 걸리버의 냉소적 태도가 다소 완화되었다.
3) 후대 판본에서 추가된 점
이후 판본에서는 당시 독자들의 반응을 고려하여 일부 표현이 더 부드럽게 수정되었다. 걸리버의 인간 혐오가 너무 강하게 느껴진다는 비판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시간이 지나면서 출판사들은 원래 스위프트가 의도했던 원고를 더 충실하게 복원하려는 시도를 했고, 현대에 가까워질수록 초판에 가깝게 출판되기도 했다.
3. 걸리버 여행기는 정말 ‘어린이 동화’인가?
《걸리버 여행기》는 흔히 어린이용 모험 소설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성인을 위한 신랄한 풍자 소설이다. 18세기 이후 일부 판본에서 아이들을 위한 동화처럼 편집되었고, 애니메이션과 동화책으로도 각색되면서 이 같은 오해가 퍼졌다. 그러나 원래 작품을 살펴보면, 이는 단순한 판타지가 아니라 정치·사회적 비판과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고 있다.
1) 어린이용 판본 vs. 원작의 차이
어린이용 판본에서는 소인국(리리푸트)과 거인국(브로브딩낵)의 모험만 강조되며, 여행 속에서 벌어지는 정치적 음모나 사회 풍자는 삭제되거나 완화되었다. 예를 들어, 걸리버가 리리푸트에서 권력 투쟁과 음모에 휘말리는 장면, 브로브딩낵에서 인간 문명을 조롱하는 장면 등은 축소되었다.
그러나 원작은 훨씬 더 복잡한 의미를 담고 있다.
- 리리푸트(소인국): 영국과 프랑스의 전쟁을 풍자. 왕과 대신들은 어리석고, 사소한 이유로 끊임없이 싸운다.
- 브로브딩낵(거인국): 영국 사회를 풍자. 브로브딩낵 왕은 걸리버가 설명하는 영국 정치와 사회 제도를 듣고 “너희 나라 사람들은 벌레만도 못하다” 라며 경멸한다.
- 라퓨타(하늘을 나는 섬): 현실과 동떨어진 지식인과 과학자들을 비판.
- 후이늠(말의 나라) vs. 야후(타락한 인간들): 인간 이성이 아닌 동물적 본성이 지배하는 현실을 신랄하게 조롱.
2) 성인 독자를 위한 신랄한 풍자
스위프트는 당시 영국 사회의 모순을 신랄하게 꼬집었다. 예를 들어, 리리푸트의 왕이 걸리버에게 “네가 충성할 것을 맹세한다면, 자유를 주겠다”고 말하는 장면은 군주의 독재와 국민의 복종을 요구하는 정치적 현실을 비판한 것이다.
또한 마지막 여행지인 후이늠의 나라에서 걸리버는 인간(야후족)이 탐욕스럽고 잔인하다고 느끼며 인간 사회를 혐오하게 된다. 이런 결말은 결코 어린이들에게 쉽게 이해될 내용이 아니다.
즉, 《걸리버 여행기》는 단순한 모험담이 아니라 정치적 풍자와 인간 본성에 대한 통찰을 담은 작품이며, 어린이용 동화라고 보기엔 지나치게 냉소적이고 복잡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4. 걸리버가 만난 세계, 현대에도 유효한가?
18세기에 쓰인 《걸리버 여행기》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메시지를 던진다. 스위프트가 비판한 정치적 부패, 인간의 어리석음, 과학과 윤리의 문제 등은 현대 사회에서도 충분히 적용될 수 있다.
1) 리리푸트와 브로브딩낵: 권력과 인간 본성
리리푸트(소인국)에서 걸리버는 사소한 이유로 전쟁을 벌이는 모습을 목격한다. 이는 현대에도 여전히 반복되는 국가 간 분쟁과 정치적 대립을 떠올리게 한다. 사소한 차이를 확대 해석하여 갈등을 만드는 모습은 과거에도, 지금도 변함이 없다.
반면, 브로브딩낵(거인국)의 왕은 영국 사회를 듣고 한심하게 여긴다.
- "너희 나라에서는 정직한 사람이 출세할 수 없고, 부패한 자들이 권력을 쥐는구나."
- "전쟁을 좋아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러한 비판은 오늘날에도 적용된다. 부패한 정치인, 전쟁과 권력 다툼, 탐욕으로 가득 찬 사회 구조는 스위프트가 살던 시대나 현대나 다를 바 없다.
2) 라퓨타: 과학과 기술의 맹점
하늘을 나는 섬, 라퓨타에서는 현실과 동떨어진 학자들이 쓸모없는 연구에 집착하는 모습이 나온다.
예를 들어, "오이를 태양광으로 변환해 에너지를 얻는 실험" 같은 어이없는 연구를 하는데, 이는 현실과 유리된 엘리트 계층을 비판하는 것이다.
현대에도 일부 과학 연구나 경제 정책이 실생활과 괴리되어 있거나,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스위프트는 이미 18세기에 이러한 문제를 예리하게 지적했다.
3) 후이늠과 야후: 인간 본성에 대한 질문
마지막 여행지 후이늠(이성적인 말들의 나라)에서는 인간(야후족)이 탐욕스럽고 폭력적이며 본능적인 존재로 묘사된다. 걸리버는 오히려 후이늠 같은 이성적인 존재가 이상적인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믿게 된다.
이 부분은 인간의 본성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진다.
- 인간은 야후처럼 탐욕적이고 본능에 충실한 존재인가?
- 아니면 후이늠처럼 이성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존재인가?
이 질문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정치, 경제, 환경 문제 등에서 인류가 정말 이성적인 결정을 내리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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