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김일한은 집에 돌아와 서재로 향했다.
그가 서재에 앉자마자, 하루 동안 쌓인 피로가 조금씩 풀리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마음속에서 떠나지 않는 한 가지 생각이 있었다.
바로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였다.
그는 계속해서 반지에 대해 궁금증을 품고 있었지만, 여전히 그 비밀을 풀 수 없었다.
그는 고개를 저으며 생각을 정리하려 했다.
그러나 반지에 대한 의문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혹시 내가 착각하는 건가?'
그는 일단 사람들에게 반지가 보이는지 확인하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일부러 손을 눈에 띄게 흔들며 일상적인 동작을 해보았다.
가벼운 손짓을 하거나, 책을 집어 들거나, 마우스를 조작할 때 손을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맞추어 자주 드러내 보였다.
그때마다, 반응은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아무도 그의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한숨을 쉬었다.
"내가 본 게 맞는 거겠지?"
그는 이제야 그 반지가 자신에게만 보인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그의 손가락에 여전히 존재했지만,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다시 반지를 바라보며 손끝을 쓸어보았다.
반지의 차가운 느낌이 그의 피부를 자극했다.
"도대체 뭐지… 왜 나만 보이는 걸까?"
계속해서 그 문제를 생각했지만, 답을 내릴 수는 없었다.
반지는 여전히 그의 손가락에 끼워져 있었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었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그가 은퇴한 지 하루가 지났다.
어제까지의 바쁜 일상은 이제 끝이 났고, 오늘부터는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차례였다.
하지만 그가 은퇴 후 첫날, 집에서 휴식을 취하려던 계획은 곧 깨지고 말았다.
그는 여전히 반지의 용도를 알아내지 못했지만, 착용감이 너무 좋아 그만큼 끼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을 정도였다.
하루 종일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자연스럽게 여기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러던 중, 은퇴를 먼저 한 친구 김상민이 전화를 걸어왔다.
김상민은 그가 집에만 있으면 병이 날 거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집에만 있으면 안 돼. 계속 외부 활동을 해야 해. 내일은 나와 함께 등산 가자."
김상민은 그렇게 말했다.
이미 은퇴 후 집에서 쉬는 것은 위험하다고 믿고 있었던 그였다.
그는 태백산으로 가자고 제안했다.
그는 잠시 망설였지만, 친구의 진지한 말에 결국 동의했다.
은퇴 후 처음 맞이한 하루, 그가 선택한 것은 한적한 집에서의 휴식이 아니라, 김상민과 함께 떠나는 여행이었다.
"태백산, 좋네. 가자."
그렇게 그는 태백산 등산을 결심했다.
다음날 아침 김일한의 집 앞에 검은색 SUV가 멈춰 섰다.
운전석에서 김상민이 창문을 내리며 손을 흔들었다.
"어이, 타라! 늦으면 태백산 입구에서 주차도 못 한다더라."
일한은 차에 오르며 가볍게 인사를 건넸다.
"이른 시간부터 고생이 많네."
상민은 미소를 지으며 가속 페달을 밟았다.
"은퇴한 몸이 뭐 고생이냐. 이렇게라도 안 움직이면 더 굼떠진다니까. 근데 너, 은퇴 기분이 좀 어때? 적응 돼?"
"글쎄, 아직 실감은 안 나. 그냥 주말처럼 느껴져."
일한이 창밖을 내다보며 답했다.
상민은 기다렸다는 듯 말을 이어갔다.
"내가 그래서 너한테 태백산 가자고 한 거야. 딱 나도 너 같은 상태였거든. 은퇴하고 처음엔 좋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뭔가 허전해져. 그럴 때 딱 자연 속에서 심호흡하면 좀 나아진다니까."
운전하는 동안 상민은 은퇴 후의 삶에 대해 열심히 이야기를 풀어냈다.
어떻게 하루를 보내는지, 취미 생활은 무엇을 시작했는지,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까지.
그에게는 은퇴 선배로서 일한에게 해주고 싶은 말들이 많아 보였다.
"너도 곧 알게 될 거야. 중요한 건 뭐냐면, 은퇴 후에는 스스로를 더 잘 챙겨야 한다는 거야. 아니면 하루가 의미 없이 흘러가거든."
일한은 상민의 말을 흘려듣는 듯했지만,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차는 산길을 따라 구불구불 올라갔고, 어느새 태백산 유일사 주차장에 도착했다.
하늘은 회색빛 구름으로 뒤덮여 있었고, 부드러운 빗방울이 차창에 맺혔다.
일기예보에서는 오늘 하루 맑을 거라고 했었다.
하지만 유일사 주차장에 도착한 순간부터 잔잔한 비가 내리고 있었다.
김일한은 창밖으로 내리는 보슬비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일기예보 참 안 맞네. 분명히 맑다고 했는데."
김상민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어보였다.
"태백산은 원래 그래. 고지가 높다 보니 기상 예보랑 다를 때가 많아. 근데 이런 날씨가 오히려 좋아. 시원하고 사람도 적고."
일한은 상민의 말에 반신반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빗줄기가 더 굵어질 기미는 없어 보였지만, 하늘은 여전히 잿빛이었다.
"정말 등산하기 좋은 날씨 맞아? 괜히 올라갔다가 비 더 오면 어쩌려고."
"걱정 마, 이런 건 산에 다니는 사람들만 아는 거라니까. 자, 준비됐으면 출발하자."
상민은 가볍게 어깨를 두드리며 일한을 이끌었다.
일한은 가방 속 우의를 꺼내 입고, 모자를 눌러 쓴 채 따라 나섰다.
그들은 주차장을 떠나 천천히 산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나뭇잎에 맺힌 빗방울이 바람에 흔들리며 떨어졌고, 흙길은 촉촉하게 젖어 발소리가 더욱 부드럽게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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