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식사를 간단히 마친 후, 일한은 거실 소파에 앉아 오랜만에 TV 전원을 켰다.
은퇴 전에는 바쁘게 외출만 하느라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거의 없었기에, TV는 설치되어 있었지만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화면이 켜지자, 그는 손끝으로 리모컨의 버튼을 눌러 채널을 돌리기 시작했다.
채널을 이리저리 바꾸다 보니, 어린이 채널이 잠깐 스쳐 지나갔다.
그는 잠시 멈춰서 그 화면을 보며 손목에 낀 반지를 살폈다.
그 반지가 자신에게만 보인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문득 생각이 스쳤다.
'혹시 이게 단말기 같은 것 아닐까?'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지만, 곧이어 자책하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지지리 궁상이네..."
그는 스스로 그 생각이 웃겼다.
혼자 집에 있는 만큼, 무언가 장난을 치고 싶은 마음에 반지에게 말을 걸어보기로 했다.
"내 말 들리니?"
일한은 반지에게 말하며 웃음을 지었다.
잠시 멈칫한 후, 그는 생각나는 대로 만화에서 본 주문들을 불러 보았다.
"열여라 참께! 수리수리 마수리!"
말을 끝내자, 자신이 하는 행동이 우스꽝스럽다고 느껴지면서도, 그 장난스러운 기분에 웃음이 나왔다.
그 순간, 문득 그가 기억했다.
반지 안쪽에 한자가 새겨져 있었던 것이었다.
처음에는 정신없이 반지를 만지작거리다가 지나쳤던 그 글자들. 그는 갑자기 그것들이 떠오르며, 한자로 된 단어를 사용해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아마 그것이 제대로 된 열쇠일지도 모른다고 느꼈다.
그는 한동안 생각에 잠기었다.
한자 중에서, 지금까지 언급했던 단어와 비슷한 의미를 가진 것이 있을까?
그가 떠올린 단어들 중 몇 가지를 한자 형태로 시도했다.
개방(開放)과 개벽(開闢)—열다, 시작하다 같은 의미를 가진 단어들이 떠오르며 입에서 나왔다.
하지만 여전히 반지의 반응은 없었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더 이상 이렇게 시도하는 것이 무의미할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는 마지막으로, 특별한 의미 없이 단순히 "통신개방(通訊開放)"이라고 입을 열었다.
그 순간, 그의 말에 반응이라도 할 듯, 반지의 표면이 미세하게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반지에서 갑자기 부드러운 여성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사용자를 인식합니다. 첫 번째 연결로서 사용 전 학습을 추천드립니다. 학습을 원하시면 ‘학습시작(學習開始)’이라고 말씀해 주세요.”
그의 눈이 크게 뜨였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한 그는 그 자리에서 멈칫했다.
목소리의 음성은 너무나도 현실적이고 선명해서, 반지에서 나온 소리라는 사실조차 믿기 어려웠다.
그의 입술은 순간 말없이 굳어버렸다. 마치 그 목소리가 진짜로 그의 곁에서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고,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그는 손에 쥐고 있던 반지를 다시 한 번 내려다봤다.
어제까지 단순히 장식에 불과했던 이 반지가, 이제는 말을 하는 존재로 변해버린 것이다.
그저 장난처럼 생각했던 것들이 현실로 다가오자, 불안감과 궁금증이 밀려왔다.
그는 순간적으로 당황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머리가 하얘지며, 손에 쥔 반지가 마치 살아있는 듯 소리를 내자,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그러나 잠시 후, 그의 눈이 부드럽게 반짝이며 정신을 차렸다.
그는 한숨을 내쉬고, 머릿속을 정리하려 애썼다.
“학습 시작”
이라는 단어가 반복되는 순간, 그의 뇌리에는 최근에 본 게임에서의 튜토리얼 장면이 떠올랐다.
게임을 시작하기 전에 등장하는 짧은 설명과 안내처럼, 이 반지도 사용법을 가르쳐주는 어떤 과정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아마도 이 반지는 그와 대화할 준비가 되어 있고, 이제 그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서 일종의 ‘학습’을 시작하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반지에서 나온 목소리가 자신에게 직접 말을 걸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낯설고 이상한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그동안 이런 경험이 전혀 없었기에, 그는 마치 인공지능에게 말을 걸듯,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시작해 주세요."
반지를 향해 말하면서도 그의 목소리는 경어로 나왔다.
이 반지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모르기 때문에, 일단은 예의상 존댓말로 말을 건넸다.
반지는 그의 말에 반응하며, 차분한 목소리로 다시 말했다.
“본 장비를 운영 중에 어떤 일이 발생할지 모르니, 안전한 장소인지 확인해 주세요.”
일한은 잠시 생각하다가, 자신이 지금 있는 곳이 안전하다는 것을 확신하며 대답했다.
“안전합니다.”
반지는 그의 대답에 만족한 듯, 이번에는 조금 더 부드럽게 말했다.
“편안한 자세로 누워 주세요.”
그는 잠시 망설였지만, 반지의 지시에 따르기로 했다. 집 안에서 가장 편안한 장소인 거실 소파로 다가가, 몸을 천천히 누였다.
몸이 완전히 소파에 기대자, 그가 반지에게 말했다.
“누웠습니다.”
그의 말에 반지는 곧바로 답했다.
“준비가 완료되었습니다. 학습을 시작합니다.”
일한은 잠시 생각할 새도 없이 대답했다.
“네.”
그리고 그 순간, 그의 시야가 점차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눈앞이 흐려지며, 마치 자신이 어떤 힘에 의해 끌려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몸은 그대로 소파에 눕고 있었지만, 의식은 점점 더 멀어지는 것 같았다.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지고, 점차 현실과의 경계가 흐려지는 느낌을 받았다.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는 그저 순응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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